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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헨리조지

2008/12/12 17:39

이 책을 손에 넣게 된지는 1년이 넘었다. 사실 좀 특별한 기억을 안겨준 책인데, 앞으로도 그럴일이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저자의 부탁으로 책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부동산 관련한 문제를 다룰 때라 잊지 않고 기억해서 보내준 것 같다. 어떤 이들에겐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아무 근거없이 어깨에는 힘을, 허파에는 바람을 넣어준 사건이었다.

그런 책을 1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부동산 투기와 살인적인 집값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선도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부동산 문제였으며, 욕망이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불려놓은 거품이 공포감을 조성하며 빠지고 있는 이 때에 시의성있는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헨리조지. 지금의 주류 경제학자들로 부터는 외면받은 이름이지만, 무명의 인쇄공에서 경제적 통찰력을 가진 고수로 거듭났던 그때 그 시절의 미네르바다. 그는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며 경제적 고통 즉, 빈곤의 악순환의 근본원인에 '땅'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응시했던 사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표적인 헨리조지스트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진출하면서 그의 사상을 접목한 정책을 입안하고 좌절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헨리조지가 혼신을 다해 써내려간 진보와 빈곤과 같은 저작들은 많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고, 헨리조지는 많은 강연 등을 통해 땅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을 저주하고 위협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은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빈곤의 문제를 토지사유제에 대한 수술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며, 이를 부인하고 빈곤을 경제성장의 당연한 결과이며 운명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과 멜서스와 같은 학자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사실, 토지사유제를 문제삼는 헨리조지와 헨리조지 학파의 의견에 대해 단번에 날아드는 공격은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색깔 공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할게 볼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이후에 내려도 충분하기 때문에 '사유제'의 문제를 집어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적개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산과 경제활동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토지가 일부에게 점유되고, 그에 따라 생산의 이익이 단순히 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일부에게 집중되는 것에 대해 헨리조지는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땅은 땀흘려 일한 댓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있었고, 그 존재만으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땅을 누군가만 소유하고 이익을 누리는 것은 도리어 반 자본주의 적인 것이라고 이들은 꼬집는다.

헨리조지의 주장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그렇다. 땀흘린 것에는 면세, 땀흘리지 않은 것에는 조세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자면 헨리조지는 근로소득세와 같이 자신의 노동력으 동원하여 노력으로 일군 부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의 기반이 되는 블로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걷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헨리조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유재산제를 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 지점에서 들었다. 배타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땀흘려 일한 댓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유제를 인정하고, 사적인 소유로 허용했을 때 오히려 시장의 건전성을 파괴하고, 부의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는 진정한 사유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헨리조지와 헨리조지 학파는 반자본주의라는 치명적인 공격에 대해 지공주의에 의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시함으로써 반박한다.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한 곳에서 토지를 국유화하는 무리한 방식자체가 통할 수도 없을 뿐더러, 토지사유제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 도리어 진정한 자본주의의 사유제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재산제의 틀 안에서 지대만을 환수하는 방법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우리 나라에서 헨리조지 이론의 실현을 위해 애쓰고 있는 토지정의시민연대와 같은 곳에서는 이를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고 이름을 붙여, 이들의 주장에 자세히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막연한 거부감을 줄여보려는 것 같다.

땀흘려 일한 댓가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고, 지대와 같이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강화할 때 헨리조지는 세정에 대한 투명성과 호응도 높아질 뿐더러 땅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탈세와 같은 행위도 일어날 가능성이 적음을 주장한다. 수많은 세금과 복잡한 세법으로 국가와 개인이 탈세와 절세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쫓고 쫓기는 복잡한 사회에서 매우 간단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 주장이다.

이렇게 헨리조지는 땅이 생산에서 가지는 의미, 사유화 될 수 없는 이유, 블로소득에 대한 철저한 환수만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지속적이고 풍요로운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매우 논리적이고도 차분하게 설명한다.

나도 요즈음 땅의 문제 만은 아니지만, 삶의 기반이 되는 것들이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취급될 때 발생하는 빈곤의 악순환, 기반조차 없는 사람들의 절망에 대한 생각을 많이한다.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가능성과 잠재력과 꿈과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펼쳐보기도 전에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병을 고치기 위해 삶을 허비하게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된다. 과연 국가는 왜 존재하며,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 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문제의 원인에 땅이 있다는 연구에 일정부분 공감하기도 하지만 헨리조지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해진 현재에 더 세밀하고, 철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여지는 남겨두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거리두기는 아마도 헨리조지의 이론에 대한 아직은 충분치 않은 나의 이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학문적인 진지함과, 실제적인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의 심각한 부동산 문제로 조금씩 이 문제가 고개를 내미는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나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현상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태도에 대한 경계를 가진다. 특히나 많은 약자들이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그들이 가진 문제들의 악순환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프다. 많은 정치, 사회 문제들이 그렇지만 경제의 문제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헨리조지의 이런 문제제기는 아직은 잘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본질을 이야기 한다는 차원에서는 반가운 것이 확실하다. 찰스 킨들버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제학 교수가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지적을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도 들이대 보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는 현실이고, 곧 밥이고, 생활이다. 그것에 대해서 이제는 알아야 하는 시대다. 과거 미국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미네르바가 이야기해주는 경제의 문제, 오늘날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네르바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경제 해설은 우리 스스로 고민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어찌됐든 경제를 공부해야하긴 하겠다. 결론이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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