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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비서가 할 수 있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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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17:10
#1. 탈당이 억울한 최구식 의원?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선관위 홈페이지 DDOS 공격은 자신의 9급비서가 한 일이라고 거듭주장하면서, 억울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당을 탈당했다. 진실은 당사자가 아닌 한 알 수 없는 일이나,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봐도 9급비서가 범행의 도구가 아니라 주범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다는 것은 성철 스님이 기독교인이 되거나, 김수환 추기경이 불자가 되는 정도의 확률을 가지는 일이라 생각되기에 의원직 사퇴나 대국민 사죄도 아니고 고작 탈당한다는 자신의 처지가 "기가막힌다"고 하는 국회의원도 우습고, 범행을 '자백'하고 구속되어 있는 9급 비서가 딱하기도 하다.
#2. 나는야 별정직 공무원계의 신화?
국회의원은 현재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더 많은 보좌진을 두는 것이야 자신의 자유겠지만, 국가가 인건비를 지급해주는 인원이 그렇다는 것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용이 되는데 4급 보좌관 두명, 5급 비서관 2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 그리고 인턴 2명으로 구성된다. 보통 4급, 5급, 6급 보좌진이 정책과 정무를, 7급이 수행(운전)을, 9급이 행정을 그리고 인턴이 사무실 업무를 보조하는 것으로 역할이 나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도 고정된 것은 아니어서 사무실의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이 된다. 국회의원의 행정비서가 오랜시간 인연을 맺고 일해온 경우 5급으로 행정업무를 보는 경우도 있고, 정책비서가 나이가 젊은 경우 9급으로 정책비서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국회의원실 인턴을 해봤고, 후에 9급 정책비서, 7급 정책비서 그리고 5급 비서관으로 일했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신분(?)을 경험해 본 편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볼 때 "9급 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일의 처음이자 끝이고, 주인공"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9급 비서가 어떻게 의원의 '지시'없이 혼자의 판단으로 '당과 후보'를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3. 인턴, 9급, 7급, 그리고 5급이 할 수 있는 일
국회의원 보좌진은 직급에 따라 그 책임과 업무의 범위가 다르다. 다만, 역할이 다르다고 해서 업무의 강도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 같이 격무에 시달리고, 고생한다. 국회의원의 사무실마다 사정과 업무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의원을 정점으로 보좌관, 비서관, 비서가 깊은 연관성으로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책임과 역할에 걸맞게 업무에 재량을 가지고 권한을 행사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무제한적이지 않다. 서로의 업무가 있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처리해나가기 때문이다.
인턴은 주로 자료를 조사해 정리하고, 마이너한 이슈에 대한 질의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의원실의 업무를 보조한다. 국회의원의 '공식 도장'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임금의 옥쇄가 매우 중요한 상징이자 역할을 하듯이, 헌법기관으로서 법안을 발의하고 여러가지 효력을 발휘하는 국회의원의 업무에 의원의 공식입장을 표명하는 마지막 관문이 '도장을 찍는 일'이다. 누구나 도장을 함부로 찍으면 안되듯, 국회의원도 도장을 함부로 찍지 않는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 법안인데, 무심코 친한의원이 부탁한다는 이유로 도장을 찍었을 경우 그 의원이 받게 될 국민의 비판은 불보듯 뻔한일 아니겠는가?
인턴으로 어쩌다가 의원실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 어떤 의원실의 보좌관이 찾아와 의원과 의원끼리 다 얘기가 된 것이니 도장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인턴으로 어리버리 했던 나는, 그것을 우리 방의 책임있는 보좌관에게 확인하지도 못하고, 공동발의 서명부를 들이미는 보좌관의 위세에 눌려 그만 의원실의 도장함을 열어 도장을 찍어줬다.
후에 보좌관이 돌아와 좀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니, 절대 그런일이 없고 그건 도장을 찍어주면 안되는 거라면서 도장 찍어준걸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색이 되어서 그 방에 찾아가 보좌관에게 내가 잘못알고 찍은것이니 없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사정하고 하소연했다. 이미 도장을 받아가 부탁하는 입장이 바껴버린 상태에서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것이다. 어찌어찌해서 일이 해결되었지만, 한 번의 실수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잘못과 실수가 의원의 지시없이 내가 저지른 잘못의 최대치였다.
9급으로 정책을 담당했던 때도, 내가 의원의 지시와 의원과의 교감없이 저지른 잘못이라곤 피감기관에 자료요구를 잘못해서 곤욕을 치른 일밖에 없다. 딱 서류 한장 받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료요구를 잘못해서 택배 오토바이도 아니고, 다마스에 큰 상자 두개가 실려 의원실로 서류가 배달됐다. 숨만쉬고 그 서류만 봐도 1년도 더 걸릴것 같은 서류 더미로 사무실이 꽉 찼다. 이런 애송이의 실수에 사무실 선배들은 혀를 찼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국정감사 때가 되면, 공무원들이 국회의 자료요구 때문에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인것을 알기에 쓸데없이 공무원 고생을 시킨 것도 너무 미안했다. 국회가 정부를 감시하는 갑의 입장이라해도, 쓸데없는 고생을 시킬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에. 그래서 그 기관에 전화를 해서 원래 이렇게 자료요구할 일이 아닌데, 실수가 있어서 이렇게 고생을 시켰다고 정중히 사과도 했다. 그런 사고를 치고 국회에서 일하는데 교훈을 얻을수 있었다.
5급 비서관이 되어서 내가 나 스스로 저지른 사고(?)의 최대치는 담당 부처 공무원을 울린일이 전부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해당 부처 장관의 축사를 자료집에 넣기위해 요청을 했었는데, 원고를 보내준다더니 며칠동안 미루기만 해서 그 사정을 알아보려고 연락을 했더니 담당 사무관이 "의원실 토론회가 너무 편향되어있어서 써드리기가 곤란하다"는 것 아닌가? 아무리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는 토론회라 하여도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공식적으로 "편향"운운하는게 너무 기가차서, 정말 그러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언성을 높여 윽박질렀다. 그랬더니 엘리트로 촉망받는 젊은 사무관일 그 공무원이 울먹이며 사과했고, 후에 그 상사가 찾아와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일도 잘못은 잘못이고, 인간적으로 언성을 높이고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해 장문의 사과문자까지 보내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게 국회 보좌진이 지시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의 수준이다. 그런데, 9급 비서가 헌법으로 설치된 국가기관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고, 선거부정을 획책하는 일을 혼자 저질렀다니 나는 그것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를 않는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텐데, 그 책임을 힘없는 부하에게 떠넘기려는 못난 모습을 보는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지도자의 책임감과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들의 결정과 처신에 삶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이 어떤 곤란과 고통을 겪을지 안봐도 뻔한일이 아닐까. 앞으로 있을 중요한 선거들이 그 책임과 역할에 올곧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펼쳐지기를 바래본다.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선관위 홈페이지 DDOS 공격은 자신의 9급비서가 한 일이라고 거듭주장하면서, 억울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당을 탈당했다. 진실은 당사자가 아닌 한 알 수 없는 일이나,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봐도 9급비서가 범행의 도구가 아니라 주범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다는 것은 성철 스님이 기독교인이 되거나, 김수환 추기경이 불자가 되는 정도의 확률을 가지는 일이라 생각되기에 의원직 사퇴나 대국민 사죄도 아니고 고작 탈당한다는 자신의 처지가 "기가막힌다"고 하는 국회의원도 우습고, 범행을 '자백'하고 구속되어 있는 9급 비서가 딱하기도 하다.
#2. 나는야 별정직 공무원계의 신화?
국회의원은 현재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더 많은 보좌진을 두는 것이야 자신의 자유겠지만, 국가가 인건비를 지급해주는 인원이 그렇다는 것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용이 되는데 4급 보좌관 두명, 5급 비서관 2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 그리고 인턴 2명으로 구성된다. 보통 4급, 5급, 6급 보좌진이 정책과 정무를, 7급이 수행(운전)을, 9급이 행정을 그리고 인턴이 사무실 업무를 보조하는 것으로 역할이 나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도 고정된 것은 아니어서 사무실의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이 된다. 국회의원의 행정비서가 오랜시간 인연을 맺고 일해온 경우 5급으로 행정업무를 보는 경우도 있고, 정책비서가 나이가 젊은 경우 9급으로 정책비서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국회의원실 인턴을 해봤고, 후에 9급 정책비서, 7급 정책비서 그리고 5급 비서관으로 일했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신분(?)을 경험해 본 편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볼 때 "9급 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일의 처음이자 끝이고, 주인공"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9급 비서가 어떻게 의원의 '지시'없이 혼자의 판단으로 '당과 후보'를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3. 인턴, 9급, 7급, 그리고 5급이 할 수 있는 일
국회의원 보좌진은 직급에 따라 그 책임과 업무의 범위가 다르다. 다만, 역할이 다르다고 해서 업무의 강도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 같이 격무에 시달리고, 고생한다. 국회의원의 사무실마다 사정과 업무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의원을 정점으로 보좌관, 비서관, 비서가 깊은 연관성으로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책임과 역할에 걸맞게 업무에 재량을 가지고 권한을 행사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무제한적이지 않다. 서로의 업무가 있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처리해나가기 때문이다.
인턴은 주로 자료를 조사해 정리하고, 마이너한 이슈에 대한 질의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의원실의 업무를 보조한다. 국회의원의 '공식 도장'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임금의 옥쇄가 매우 중요한 상징이자 역할을 하듯이, 헌법기관으로서 법안을 발의하고 여러가지 효력을 발휘하는 국회의원의 업무에 의원의 공식입장을 표명하는 마지막 관문이 '도장을 찍는 일'이다. 누구나 도장을 함부로 찍으면 안되듯, 국회의원도 도장을 함부로 찍지 않는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 법안인데, 무심코 친한의원이 부탁한다는 이유로 도장을 찍었을 경우 그 의원이 받게 될 국민의 비판은 불보듯 뻔한일 아니겠는가?
인턴으로 어쩌다가 의원실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 어떤 의원실의 보좌관이 찾아와 의원과 의원끼리 다 얘기가 된 것이니 도장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인턴으로 어리버리 했던 나는, 그것을 우리 방의 책임있는 보좌관에게 확인하지도 못하고, 공동발의 서명부를 들이미는 보좌관의 위세에 눌려 그만 의원실의 도장함을 열어 도장을 찍어줬다.
후에 보좌관이 돌아와 좀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니, 절대 그런일이 없고 그건 도장을 찍어주면 안되는 거라면서 도장 찍어준걸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색이 되어서 그 방에 찾아가 보좌관에게 내가 잘못알고 찍은것이니 없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사정하고 하소연했다. 이미 도장을 받아가 부탁하는 입장이 바껴버린 상태에서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것이다. 어찌어찌해서 일이 해결되었지만, 한 번의 실수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잘못과 실수가 의원의 지시없이 내가 저지른 잘못의 최대치였다.
9급으로 정책을 담당했던 때도, 내가 의원의 지시와 의원과의 교감없이 저지른 잘못이라곤 피감기관에 자료요구를 잘못해서 곤욕을 치른 일밖에 없다. 딱 서류 한장 받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료요구를 잘못해서 택배 오토바이도 아니고, 다마스에 큰 상자 두개가 실려 의원실로 서류가 배달됐다. 숨만쉬고 그 서류만 봐도 1년도 더 걸릴것 같은 서류 더미로 사무실이 꽉 찼다. 이런 애송이의 실수에 사무실 선배들은 혀를 찼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국정감사 때가 되면, 공무원들이 국회의 자료요구 때문에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인것을 알기에 쓸데없이 공무원 고생을 시킨 것도 너무 미안했다. 국회가 정부를 감시하는 갑의 입장이라해도, 쓸데없는 고생을 시킬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에. 그래서 그 기관에 전화를 해서 원래 이렇게 자료요구할 일이 아닌데, 실수가 있어서 이렇게 고생을 시켰다고 정중히 사과도 했다. 그런 사고를 치고 국회에서 일하는데 교훈을 얻을수 있었다.
5급 비서관이 되어서 내가 나 스스로 저지른 사고(?)의 최대치는 담당 부처 공무원을 울린일이 전부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해당 부처 장관의 축사를 자료집에 넣기위해 요청을 했었는데, 원고를 보내준다더니 며칠동안 미루기만 해서 그 사정을 알아보려고 연락을 했더니 담당 사무관이 "의원실 토론회가 너무 편향되어있어서 써드리기가 곤란하다"는 것 아닌가? 아무리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는 토론회라 하여도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공식적으로 "편향"운운하는게 너무 기가차서, 정말 그러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언성을 높여 윽박질렀다. 그랬더니 엘리트로 촉망받는 젊은 사무관일 그 공무원이 울먹이며 사과했고, 후에 그 상사가 찾아와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일도 잘못은 잘못이고, 인간적으로 언성을 높이고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해 장문의 사과문자까지 보내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게 국회 보좌진이 지시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의 수준이다. 그런데, 9급 비서가 헌법으로 설치된 국가기관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고, 선거부정을 획책하는 일을 혼자 저질렀다니 나는 그것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를 않는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텐데, 그 책임을 힘없는 부하에게 떠넘기려는 못난 모습을 보는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지도자의 책임감과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들의 결정과 처신에 삶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이 어떤 곤란과 고통을 겪을지 안봐도 뻔한일이 아닐까. 앞으로 있을 중요한 선거들이 그 책임과 역할에 올곧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펼쳐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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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님이 버려야 할 한 가지-'전문가 론'
게시판
2011/12/28 12:59
나에게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이다. 다른 친구들이 가끔 교회얘기를 할 때도 김동호 목사님을 '너네 목사님'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2002년부터 높은뜻 숭의교회에 다녔다. 그 교회에서 2006년에 청년대학부의 대표도 했고, 이러저러하게 일했다. 지금은 그 교회가 4개로 분립되어 그 중에 한 교회인 높은뜻 정의교회에 다닌다.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에 눈물도 많이 흘렸고, 많은 마음의 감동을 얻었다. 그리고 김동호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그 나이 또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목회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나의 좋음과 존경은 그 뒤를 따라가고 그 분의 모든 말씀과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일종의 '팬덤'은 아니다. 요즘 목사님이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시는것 같은데, 사실 거기에 달리는 많은 사람들의 '찬양'과도 다를바 없는 댓글은 조금 불편하다.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본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것을 따르되 그분의 한계를 극복해 더 멋있고, 괜찮고,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따라가지 않고 넘어서고 극복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될거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도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글일수도 있다.(물론 이 글을 김동호 목사님이 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내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목사님이 이런글에 대해 그리고 이런글을 쓰는 나같은 신자에 대해 '충직한 나의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않은것을 반성한 목사, 그러나 반성만 할것 같은 목사
몇 년 전 어느 주일 예배 날 설교에서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나라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자신은 교회다니는 것만 너무 좋아한 종교인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무관심하고 동참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반성한다는 설교를 한 일이 있다.
난 그날의 설교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후회할 일, 아쉬운 일을 저지르고 살기에 무엇을 잘못했는가 보다는 그 일에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목사님의 이러한 반성이 너무도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후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목사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용산 참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목사님의 대답은 바로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목사님의 대답을 곡해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기에 그 답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김회권 / 예레미야 1장 18절에는 예레미야가 지상 권력자들인 왕들과 귀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심판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 말을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며 이 소명을 거절하거든요. 목회자들에게도 스스로를 “아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쟁점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의 종들은 사회적 의가 관련한 문제라면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동호 / 나는 이것을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문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누구나 전공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정치나 경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제일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용기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정말 용기 있는 분이었어요. 청소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아버지와 달리 용기가 없고 비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용기 있다고 해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나도 가끔씩 전공을 살려 놋성벽 같은 드센 회중을 상대로 말한 적도 있어요. 사학법 같은 문제는 우리 교단 총회장이 머리를 깎아가며 반대했어도 나는 다른 할 말을 했어요. 내가 기독교 학교에 대해서는 다소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소신을 밝힐 수 있었거든요."
(2009년 2월 인터뷰,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62)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김동호 목사님이 먼 훗날 용산 참사에 대해 '전문성이 없다'는 핑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은 하실 수 있는 분이나, 다시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때로 돌아간다고 민주화 운동을 하지는 않을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김동호 목사님이 최대치이자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목한 것은 김동호 목사님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유로 들은 '전문가 론'이다. 나는 이제 김동호 목사님이 전문가론에 대해 폐기처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현재 목사님의 삶이 스스로 그 신념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2. 김동호 목사님의 전문가론- 목사만 설교해야 한다
김동호 목사님이 전문가론을 가장 강력하게 얘기했을 때는 바로 설교는 목사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어느 때인가 평신도도 설교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설교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목사는 신학 교육을 받은 설교와 목회의 전문가다. 설교와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로 "수술을 의사가 아니라 아무나 한다고 생각해봐라.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렇게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설교는 목사가 전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애초부터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의 말씀의 통로를 독점해온 종교권력을 쳐부순것이 종교개혁 아닌가? 그리고 복잡한 종교적, 신학적 논리를 갖다 대지 않더라도, 언로를 누군가 한 사람이 독점한다는 것, 그것이 옳은 말이든 그른말이든 많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잠자코 듣고만 있고, 때때로 '아멘'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학 교육안에 계신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속에 계시기 때문이기도 한다.
어쨌든 목사님은 그렇게 목회, 설교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지셨고 그것을 강력히 주장해 오셨다. 목사님 생각은 목사님 자유이니까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제는 스스로 그 전문가론을 버리셔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분이 전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일에 손을 대고 뛰어들어 열심히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전문가들이 다 반대했지만, 다 잘되고 있다!"
김동호 목사님은 현재 열매나눔재단(www.merryyear.org)의 이사장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등을 통한 빈민자활, 탈북자들의 자립을 돕는 사업등을 하는 좋은 재단이다. 지금은 국제적인 구호개발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목사님이 이러한 일을 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는 커녕 자랑스럽고 즐겁다. 이런 일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목사님이 이 일들을 하시면서 강력하고도 확신에 차 전했던 메세지 속에서 스스로의 전문가론을 무너뜨리는 삶의 궤적을 발견한다.
이 재단에서 탈북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지금도 잘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을 하려고 할때 사업에 있어서 전문가인 교회 내의 사업가들이 목사님을 뜯어 말렸다고 한다. 전혀 성공할 수 없다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얼마 있다가 망해서 공장문을 닫게 될거라고.
그래도 목사님은 이 일을 강행했다고 한다. 옳은일 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 공장은 성공을 했다. 이제는 흑자라고 하고 탈북자들도 너무도 일을 열심히 잘한다고 한다. 김동호 목사님은 이러한 일들을 설교시간에 간증하면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고 고백했다.
"사업가들이 다 뜯어 말렸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옳은 일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있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목사가 사업한다고 말리고 비웃던 사람들이 지금은 아무말도 못한다. 여러분들도 옳은 일에 도전하라!"
그렇다. 나는 이 말을 김동호 목사님이 스스로 지키고 있는 '설교 전문가'의 영역에도 적용해 주시기를 바란다. 스스로 의사가 아닌데도 수술에 성공했다고 간증하고 설교를 하고 계신것처럼, 신성시되어 종교권력을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강단의 독점, 일상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를 나누지 못하게 하는 삶과 동떨어지게 하는 기독교, 한 사람만 말하고 나머지는 듣고 있어야 하는 비민주적인 개혁과제에 대해 그 전문가론을 거두시기 바란다.
나는 이번주에도 높은뜻 정의교회에 간다. 이런 교인도 있어야지.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에 눈물도 많이 흘렸고, 많은 마음의 감동을 얻었다. 그리고 김동호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그 나이 또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목회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나의 좋음과 존경은 그 뒤를 따라가고 그 분의 모든 말씀과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일종의 '팬덤'은 아니다. 요즘 목사님이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시는것 같은데, 사실 거기에 달리는 많은 사람들의 '찬양'과도 다를바 없는 댓글은 조금 불편하다.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본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것을 따르되 그분의 한계를 극복해 더 멋있고, 괜찮고,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김동호 목사님을 따라가지 않고 넘어서고 극복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될거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도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글일수도 있다.(물론 이 글을 김동호 목사님이 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내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목사님이 이런글에 대해 그리고 이런글을 쓰는 나같은 신자에 대해 '충직한 나의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않은것을 반성한 목사, 그러나 반성만 할것 같은 목사
몇 년 전 어느 주일 예배 날 설교에서 김동호 목사님은 우리나라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자신은 교회다니는 것만 너무 좋아한 종교인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무관심하고 동참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반성한다는 설교를 한 일이 있다.
난 그날의 설교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후회할 일, 아쉬운 일을 저지르고 살기에 무엇을 잘못했는가 보다는 그 일에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목사님의 이러한 반성이 너무도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후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목사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용산 참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목사님의 대답은 바로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목사님의 대답을 곡해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기에 그 답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김회권 / 예레미야 1장 18절에는 예레미야가 지상 권력자들인 왕들과 귀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심판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 말을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며 이 소명을 거절하거든요. 목회자들에게도 스스로를 “아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쟁점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의 종들은 사회적 의가 관련한 문제라면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동호 / 나는 이것을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문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누구나 전공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정치나 경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제일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용기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정말 용기 있는 분이었어요. 청소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아버지와 달리 용기가 없고 비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용기 있다고 해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나도 가끔씩 전공을 살려 놋성벽 같은 드센 회중을 상대로 말한 적도 있어요. 사학법 같은 문제는 우리 교단 총회장이 머리를 깎아가며 반대했어도 나는 다른 할 말을 했어요. 내가 기독교 학교에 대해서는 다소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소신을 밝힐 수 있었거든요."
(2009년 2월 인터뷰,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62)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김동호 목사님이 먼 훗날 용산 참사에 대해 '전문성이 없다'는 핑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은 하실 수 있는 분이나, 다시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때로 돌아간다고 민주화 운동을 하지는 않을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김동호 목사님이 최대치이자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목한 것은 김동호 목사님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유로 들은 '전문가 론'이다. 나는 이제 김동호 목사님이 전문가론에 대해 폐기처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현재 목사님의 삶이 스스로 그 신념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2. 김동호 목사님의 전문가론- 목사만 설교해야 한다
김동호 목사님이 전문가론을 가장 강력하게 얘기했을 때는 바로 설교는 목사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어느 때인가 평신도도 설교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설교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목사는 신학 교육을 받은 설교와 목회의 전문가다. 설교와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로 "수술을 의사가 아니라 아무나 한다고 생각해봐라.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렇게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설교는 목사가 전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애초부터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의 말씀의 통로를 독점해온 종교권력을 쳐부순것이 종교개혁 아닌가? 그리고 복잡한 종교적, 신학적 논리를 갖다 대지 않더라도, 언로를 누군가 한 사람이 독점한다는 것, 그것이 옳은 말이든 그른말이든 많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잠자코 듣고만 있고, 때때로 '아멘'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학 교육안에 계신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속에 계시기 때문이기도 한다.
어쨌든 목사님은 그렇게 목회, 설교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지셨고 그것을 강력히 주장해 오셨다. 목사님 생각은 목사님 자유이니까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제는 스스로 그 전문가론을 버리셔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분이 전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일에 손을 대고 뛰어들어 열심히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전문가들이 다 반대했지만, 다 잘되고 있다!"
김동호 목사님은 현재 열매나눔재단(www.merryyear.org)의 이사장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등을 통한 빈민자활, 탈북자들의 자립을 돕는 사업등을 하는 좋은 재단이다. 지금은 국제적인 구호개발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목사님이 이러한 일을 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는 커녕 자랑스럽고 즐겁다. 이런 일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목사님이 이 일들을 하시면서 강력하고도 확신에 차 전했던 메세지 속에서 스스로의 전문가론을 무너뜨리는 삶의 궤적을 발견한다.
이 재단에서 탈북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지금도 잘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을 하려고 할때 사업에 있어서 전문가인 교회 내의 사업가들이 목사님을 뜯어 말렸다고 한다. 전혀 성공할 수 없다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얼마 있다가 망해서 공장문을 닫게 될거라고.
그래도 목사님은 이 일을 강행했다고 한다. 옳은일 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 공장은 성공을 했다. 이제는 흑자라고 하고 탈북자들도 너무도 일을 열심히 잘한다고 한다. 김동호 목사님은 이러한 일들을 설교시간에 간증하면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고 고백했다.
"사업가들이 다 뜯어 말렸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옳은 일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있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목사가 사업한다고 말리고 비웃던 사람들이 지금은 아무말도 못한다. 여러분들도 옳은 일에 도전하라!"
그렇다. 나는 이 말을 김동호 목사님이 스스로 지키고 있는 '설교 전문가'의 영역에도 적용해 주시기를 바란다. 스스로 의사가 아닌데도 수술에 성공했다고 간증하고 설교를 하고 계신것처럼, 신성시되어 종교권력을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강단의 독점, 일상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를 나누지 못하게 하는 삶과 동떨어지게 하는 기독교, 한 사람만 말하고 나머지는 듣고 있어야 하는 비민주적인 개혁과제에 대해 그 전문가론을 거두시기 바란다.
나는 이번주에도 높은뜻 정의교회에 간다. 이런 교인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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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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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15:44
하나님 아버지.
평소에 당신께 기도를 잘 드리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기도를 한다니 좀 뻘쭘하네요. 당신께서도 좀 어색하시지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기도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무슨일 있어서 이러는건 아니니 마음 놓은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성탄절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교회와 성당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미사와 예배 그리고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흥겨운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 가짐이 있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부여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매년 똑같이 맞이하는 성탄이지만, 올해 유난히 성탄의 의미가 저에게 뜻깊게 다가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공감, 소통, 그리고 동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굳이 사람들의 아수라속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는 절대자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속으로 오신 성탄의 시작은 바로 인간의 고통과 인간의 삶에 대한 뜨거운 공감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인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처절하게 내재화 한 그 공감이 없었다면 성탄의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공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직접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 사셨습니다. 고상한 언어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언어 그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고통스런 사람들의 언어로 쉽게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 속으로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 텐데도 사람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하기를 쉬지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소통하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공감하는 인간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하나님. 그러한 신은 얼마나 멋진 신입니까!
그렇게 인간의 삶을 공감하고, 인간과 함께 소통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으로서 자신의 진심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람과 동떨어지지 않은, 동떨어지지 않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사람의 몸을 입고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그들을 책임진 그 하나님. 그것이 바로 성탄에 새겨야 할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몸소 실천하신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들과 이 땅의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속으로 오셔서, 함께 사셨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고, 우리들은 깨끗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넘어선 자만심속에 세상과 불통하고, 오히려 세상만도 못한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아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커녕, 우리는 우리끼리의 잔치에 흥이겨워 다른이들을 돌보는데 게을렀습니다. 게으른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손가락질하는데 앞장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로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거짓된 확신속에 안락히 거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에서 언제부터인가 크레인에 올라가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 하루하루 자살의 숫자를 늘려가고 있는 실직자들의 아픔을 애통해하는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많은 봉사활동에 열심을 내면서도 그 봉사활동이 존재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다른이의 고통, 세상의 고난에 무감각한 채 오히려 그 고통을 심화시키는 공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저와 우리들 그리고 교회를 바라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몸으로 친히 오셔서 모든 특권과 능력을 내려놓고 사람의 아픔에 동감하고,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그 고통에 동참했던 성탄의 의미를 진심으로 묵상하는 이 시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비된 영혼의 감각과 스스로에게 하는 신앙의 합리화와 자기위로가 부수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에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 의미도 모르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흥청망청 타락한 채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흥겹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와 모습을 한참 잃어버린 이 땅의 저와 같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보다 성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부디, 이땅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탄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고,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평소에 당신께 기도를 잘 드리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기도를 한다니 좀 뻘쭘하네요. 당신께서도 좀 어색하시지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기도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무슨일 있어서 이러는건 아니니 마음 놓은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성탄절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교회와 성당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미사와 예배 그리고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흥겨운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 가짐이 있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부여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매년 똑같이 맞이하는 성탄이지만, 올해 유난히 성탄의 의미가 저에게 뜻깊게 다가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공감, 소통, 그리고 동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굳이 사람들의 아수라속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는 절대자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속으로 오신 성탄의 시작은 바로 인간의 고통과 인간의 삶에 대한 뜨거운 공감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인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처절하게 내재화 한 그 공감이 없었다면 성탄의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공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직접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 사셨습니다. 고상한 언어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언어 그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고통스런 사람들의 언어로 쉽게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 속으로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 텐데도 사람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하기를 쉬지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소통하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공감하는 인간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하나님. 그러한 신은 얼마나 멋진 신입니까!
그렇게 인간의 삶을 공감하고, 인간과 함께 소통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으로서 자신의 진심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람과 동떨어지지 않은, 동떨어지지 않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사람의 몸을 입고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그들을 책임진 그 하나님. 그것이 바로 성탄에 새겨야 할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몸소 실천하신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들과 이 땅의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속으로 오셔서, 함께 사셨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고, 우리들은 깨끗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넘어선 자만심속에 세상과 불통하고, 오히려 세상만도 못한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아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커녕, 우리는 우리끼리의 잔치에 흥이겨워 다른이들을 돌보는데 게을렀습니다. 게으른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손가락질하는데 앞장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로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거짓된 확신속에 안락히 거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에서 언제부터인가 크레인에 올라가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 하루하루 자살의 숫자를 늘려가고 있는 실직자들의 아픔을 애통해하는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많은 봉사활동에 열심을 내면서도 그 봉사활동이 존재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다른이의 고통, 세상의 고난에 무감각한 채 오히려 그 고통을 심화시키는 공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저와 우리들 그리고 교회를 바라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몸으로 친히 오셔서 모든 특권과 능력을 내려놓고 사람의 아픔에 동감하고,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그 고통에 동참했던 성탄의 의미를 진심으로 묵상하는 이 시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비된 영혼의 감각과 스스로에게 하는 신앙의 합리화와 자기위로가 부수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에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 의미도 모르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흥청망청 타락한 채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흥겹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와 모습을 한참 잃어버린 이 땅의 저와 같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보다 성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부디, 이땅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탄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고,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